다큐멘터리 디렉터인 작가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원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저자가 우연히 시작하게 된 다큐멘터리 VJ 일은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었고, 그렇게 그녀는 다큐멘터리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가 처음 10여 년 간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바로 '다큐멘터리 3일'이었습니다. 저도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였기에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언니의 추천으로 보게 된 '다큐멘터리 3일'은 특정 공간에서 쭉 3일간을 취재하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때로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깊게 들여다봅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병원 응급실처럼, 평상시엔 잠깐 스쳐 지나가거나 가 볼 일이 없던 곳을 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하며 수많은 공간을 취재하고, 또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심지어는 교도소, 부검실, 알래스카의 한인타운 등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가보지 못할 곳들도 방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접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배움을 모아둔 책입니다. 작가가 살아오며 경험하고 느꼈던 것 또한 들어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처럼 타인의 인생에서 자신을 반추하고 인간과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한 저자는 마음이 단단하고 바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암 환자와 가족들을 취재하며 얻은 배움
저자는 '다큐멘터리 3일'의 촬영을 위해서 장성 편백 나무 숲으로 떠납니다. 그곳은 편백 나무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 말기 암 환자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입니다. '다큐멘터리 3일'은 미리 섭외 없이 촬영 당일에 만난 사람들을 취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편백 나무 숲에서 취재할 사람들을 찾던 저자는 한 부부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취재 요청을 합니다. 아내는 대장암 3기에 간으로 암이 전이되어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남편은 그런 아내와 함께 편백 나무 숲에서 생활하기로 한 것입니다. 섭외가 어려울 것이란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촬영을 허락했고, 남편은 저자에게 하나의 조건을 내겁니다. 그 조건은 아내에게 최대한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그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합니다. 그리하여 촬영을 하는 3일 동안 암과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고,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묻기로 합니다. 저자는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과 연애 스토리, 상대방의 어떤 모습에 감동했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오래되어 잊혀졌지만 행복했던 그 순간들을 끄집어냅니다. 촬영이 끝난 뒤 아내는 암 판정을 받은 후 처음으로 머리를 손질하고 '웃으며 사는 법'이라는 책을 사는 등 한결 밝아진 모습을 보입니다. 3일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작가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 저자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수술을 하게 되자 저자는 제일 먼저 생각난 그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부부는 그녀에게 자신들의 경험과 조언을 차분히 설명해주고, 어머니의 병실로 병문안까지 다녀갑니다. 낯선 타인에게 위로를 받은 저자는 스스로가 세운 세상에 대한 벽을 허물고 자신도 타인에게 마음을 나눠주겠다고 다짐합니다.
다양한 타인의 삶에서 얻어가는 삶의 지혜
다큐멘터리 디렉터인 만큼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한 어린이 병원 물리 치료실에서는 병으로 인해 당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동작들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그 아이들은 계속해서 그 동장을 연습하지만 결국 그 동작을 해낼 수도, 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을 마주하며 재활 치료를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지켜보기만 해도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재활 치료를 담당하는 치료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당장 아픈 건 일시적일 뿐이며 아이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힘들어도 계속 동작을 연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현재 아파한다고 해서 치료를 그만두면 결국 그 아이는 혼자서 일어나거나 걷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고통을 참아내며 연습을 반복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자는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초등학교 앞에서 40년간 운영된 문구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자는 아이들에게 그 죽음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아이는 죽음이란 '이 세상 일을 다한 것, 자기가 할 일을 다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할 일을 다하고 떠나셨는지 묻는 저자의 말에 아이는 '충분히 다하셨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에서는 저자뿐 아니라 독자의 눈물까지 핑 돌게 만듭니다. 또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는 판결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판결문을 읽으면서 저자는 위기에 처한 한 인쇄소 사장의 전화를 새벽 내내 들어주었던 것을 떠올리고 그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