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위로와 나아갈 방향을 찾는 손님들
청파동의 골목에 위치한 ALWAYS 편의점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물품도 다양하지 않고 행사상품도 적으며, 손님에게 말 걸기를 좋아하는 덩치 큰 야간 알바도 있습니다. 편의점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어려움과 고민을 겪지만 야간 아르바이트생 근배와 대화를 나누며 각자의 해결방법을 찾아갑니다. 삼 년째 취업준비생 소진은 월세와 학자금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 소재의 대학을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합니다. 쓰라린 마음을 달리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참이슬과 최애 과자 자갈치를 사 가는 게 얼마 안 되는 그녀의 낙입니다. 자갈치 과자는 지금은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가 가물치라고 하면서 사 왔던 추억이 깃든 음식입니다. 그날도 소진은 편의점에 들르는데, 카운터를 지키고 선 덩치 큰 아르바이트생 근배가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소진은 불편함을 느끼고 그 자리를 떠나지만 생활비 때문에 결국 구인공고가 난 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소진의 알바시간에 마스크를 쓰지 않는 무례한 손님을 근배가 물리쳐준 이후 소진은 근배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화를 하면서 소진은 자신감을 찾고, 자갈치가 아닌 포식자 가물치가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한 달 후 소진은 면접에서 자신을 가물치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고, 마침내 취업에 성공합니다. 이 외에도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코로나 시대로 장사에 어려움을 겪지만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정육식당 최 사장,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편의점으로 피난 오는 고등학생 민규의 이야기도 펼쳐집니다.
점장 오선숙과 새로운 야간 알바 근배
전작에서 독고 씨를 처음에 탐탁지 않아했던 선숙은 이제 점장이 되었습니다. 정확하게는 편의점의 진짜 사장인 염 여사의 아들 강 사장이 편의점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은 뒤, 선숙에게 귀찮은 일들을 떠넘기기 위해서 그녀를 점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다소 공격적이고 일방적이었던 선숙의 성격은 아들과의 갈등을 봉합한 뒤로 어느 정도 누그러졌습니다. 강 사장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편의점 식구들을 위해 인정을 발휘하는 점장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선숙은 전작에서 독고의 뒤를 이어 야간 알바를 맡게 된 곽 과장의 고민도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곽 과장과 소원한 관계였던 딸이 편의점으로 찾아오자 선숙은 그녀와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애씁니다. 곽 과장이 지방의 경비원으로 떠난 뒤 키가 큰 40대 근배가 야간 알바에 지원합니다.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근배는 손님들과도, 직원들과도 친화력 좋게 어울립니다. 그 모습은 마치 독고가 있었던 이전의 편의점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양한 알바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근배는 사실은 연극배우 출신입니다. 전작을 읽었던 독자분들이라면 이제 그 내막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경 작가가 썼던 그 대본의 주인공으로 근배가 낙점되었고, 코로나 확진으로 공연이 미뤄진 시간 동안 근배는 연극의 모티브가 되는 편의점에서 직접 일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며 근배는 독고의 흔적을 찾고, 편의점 사장인 염 여사와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아들 강 사장과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염 여사
그렇다면 편의점 사장인 염 여사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70대이자 역사를 가르치며 평생을 보내온 염 여사는 전작에서도 치매를 걱정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지자 그녀는 기저질환을 핑계로 양산의 언니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전원주택에서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언니와 조카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부럽기도 하고, 자신은 자식들과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공부 잘하는 누나와 비교되며 자랐던 아들은 사업에 연달아 실패한 뒤 염 여사의 편의점을 팔아 사업자금으로 보태라고 하는 등 부랑아처럼 행동하기에 큰 마음의 짐이자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한편 강 사장은 편의점과 염 여사의 빌라를 팔아 병원 개업에 보태려는 누나의 주장에 힘들어합니다. 누나가 불시에 편의점에 찾아와 편의점 경영 방만을 탓하자 그는 궁지에 몰리는데, 그때 야간 아르바이트생 근배가 그를 멋지게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강 사장은 나이가 비슷한 근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밥을 같이 먹으며 서로가 같은 대학의 선후배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듣기 싫은 조언도 솔직하게 말하는 근배에게 강 사장은 고마움을 느끼고 둘은 점점 친구가 됩니다. 연이은 사업 실패와 이혼,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피폐해진 강 사장에게 근배와의 대화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이후 근배는 알바를 그만두고 본업인 연극배우로 돌아갑니다. 근배는 강 사장에게 스스로 직접 야간 알바를 해보라고 말합니다. 편의점은 자동으로 운영되게 해야 한다며 직접 일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던 강 사장은 '오너 알바'라는 근배의 말에 설득됩니다. 그는 야간 알바를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 정리를 합니다. 그는 머리가 맑아지자 사실 염 여사가 양산으로 내려간 이유가 코로나 때문이 아닌, 자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강 사장은 염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모시러 가겠다고 하고, 염 여사도 아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둘만의 추억의 장소를 거치며 숙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전작에서 자기중심적이고 막무가내였던 강 사장에게 답답했던 독자들은 이로서 개운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치매 전 단계인 염 여사는 적극적으로 치료활동을 하고, 오랜 꿈이자 자신이 가르쳤던 역사 속 장소들을 보러 유럽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전작보다 더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 [불편한 편의점 2]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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