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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엄마, 20여년 간 엄마로 살며 깨달은 것들

by 삶공부 2022. 8. 14.

마녀엄마, 이영미, 남해의봄날, 2020

임신과 출산, 초보 엄마의 육아

결혼 후 알콩달콩한 신혼생활도 잠시, 편집자로 일한 지 3년 차에 저자는 아이를 임신합니다. 다행히 입덧이 심하지 않았지만 임신 중기부터 소화불량을 겪고 한여름에 에어컨 없는 전세방에서 임산부의 몸으로 지내느라 고생합니다. 러시아워의 지하철 출근길을 무거운 몸으로 오가며 힘들었던 기억은 임산부 전용 좌석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커다란 손이 배를 행주 짜는 것처럼 비트는 듯한 산통과 함께 태어난 아이는 자궁 속에서 태변을 먹어서 인큐베이터 신세를 집니다. 열 달을 기다려 마주 본 아이의 얼굴은 기대와 달리 까맣고 못생겨서 저자는 울음을 터트릴 뻔합니다. 애는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어린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육아를 시작한 저자는 잠이 모자라고 잘 회복되지 않는 몸 때문에 고생합니다. 친정에서의 한 달간 몸조리를 끝내고 신혼집으로 돌아온 후 회사도 그만두고 아이를 양육하는데 힘씁니다. 하루 종일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집 안에 있으면서 산후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거나 어딘가 불편하지 않아도 아기는 엄마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툭하고 울어댑니다. 낮밤이 바뀌고 초보 엄마라서 힘들었던 이 시기를 돌아보며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혼자만 힘든 게 아니고, 그 시절은 금세 지나갈 것이라고 누군가 다독여 주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다시 돌아오질 않을 그 경이로운 과정은 피하지 못할 바에야 즐겨야 한다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초보 엄마들에게 전합니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출산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아기가 7개월이 되자 다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싶은 자아가 그녀 안에서 커지기 시작합니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저자는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후줄근한 집안에서의 생활을 벗어나고 싶지만 전쟁터 같은 출퇴근 생활이 두렵기도 하고 아이를 떼어놓기 싫다는 마음도 듭니다. 시댁의 근처로 이사를 가서 부부가 출근한 동안 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게 되지만 저자의 마음은 늘 무겁습니다. 둘 다 야근을 할 때면 시댁에서 잠든 아기를 데려올 수 없어 보고 싶어 괴로워하는 날도, 다행히 아기가 자고 있지 않아서  데려오는 날도, 자고 있더라도 고집을 부려 업어서 집까지 데려오는 날도 차곡차곡 엄마의 마음 안에 쌓입니다. 돌을 넘긴 아이는 급성 후두염으로 툭하곤 아프곤 했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매번 휴가를 쓸 수는 없었기에 아픈 아이를 병원에 두고 꾸역꾸역 출근을 했습니다. 당시 힘든 몸과 마음 때문에 일에 대한 의욕조차 사라지고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저자는 일단 버티기로 하고 남편과 동지 의식을 느끼며 고비를 이겨냅니다.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며 눈치도 보고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저자는 시어머니가 있었기에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저자는 괜히 시어머니를 어려워하지 말고 편하게 대하자고 마음먹습니다. 어머니가 부엌에 있어도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그만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며, 너무 피곤하면 어머니가 옆이라도 벌러덩 드러눕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지게 됩니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교육에 올인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책과 시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라는 시에는 부모가 먼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낼 것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즐겁게 출근하고 일에 몰두하면서 독립된 인간으로서 잘 사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자고 다짐합니다.

 

엄마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책

이 책은 [마녀체력]으로 유명한 작가 이영미가 자신의 20여 년 동안의 육아에 대해 쓴 글입니다. 전작이 여성들에게 체력의 중요성과 운동의 동기를 불러일으켰다면, 이 책은 엄마로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시원시원한 문장과 높은 필력으로 글은 무척이나 잘 읽힙니다. 임신과 출산 뒤에 이어진 육아는 저자에게 깨달음을 주고 성장하게 합니다. 어린 아기를 시댁에 맡겨 놓고 출근하는 워킹맘의 시간은 괴로운 기억을 남겨놓기도 합니다. 아기가 아프던 순간들, 위급상황의 순간들은 지금도 저자의 끔찍한 기억 중 하나입니다. 부모를 보고 그대로 배우는 아이이기에 똑똑한 부모보다 정직한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20년 전이라는 시대에 비해 더 가정적이었던 남편이었지만 시어머니와 저자의 밀착 육아와 그 틈을 파고들 의지 부족으로 남편은 육아 보조자의 역할에 머뭅니다. 어릴 적 제대로 유대감을 쌓지 못한 결과 남편은 아기가 소년으로 크는 동안 친밀감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빠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는 엄마가 문지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설프더라도 남편이 육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아기를 맡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렇게 아이를 키웠던 과정을 돌아보며 스스로가 잘했던 점, 그리고 아쉬웠던 점들을 펼쳐놓으며 이제 막 엄마로 살기 시작한 독자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편집자인 저자답게 곳곳에 언급되어 있는 책들을 따로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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