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의 짧은 소설로 이뤄진 책
이 책은 2012년도에 출판사 창비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서유미 작가가 쓴 책으로, 단편소설집입니다. 서유미 작가는 2007년도에 문학수첩 작가상과 창비 장편소설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책은 8개의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분간 인간이라는 책 제목은 그 소설들 중 하나의 제목입니다. 소설들의 내용은 하나같이 암울하며 때로는 비현실적인 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8개의 소설을 차례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스노우맨'은 길이 없어질 정도의 폭설에도 출근하려고 애쓰는 직장인의 모습이 나와있습니다. 두 번째 '그곳의 단잠'에서는 각각 고층 아파트와 반지하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세 번째 이야기인 '저건 사람도 아니다'에는 로봇 도우미에게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밀려 자리를 잃어가는 워킹맘이 나옵니다. 네 번째 '삽의 이력'에는 각자 구덩이를 파고, 다시 구덩이를 덮는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는 두 사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섯 번째 소설 '당분간 인간'은 직장생활을 하며 상처받고 몸이 물렁해지거나 딱딱해지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여섯 번째 '타인의 삶'은 서로를 몰래 감시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일곱 번째 '세 개의 시선'에서는 임신을 위해 대리부를 얻기로 한 부부와 그 관계에 얽혀 돈을 받아내려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덟 번째 '검은 문'에서는 하루 종일 벽돌의 손잡이를 돌려서 숫자를 높이는 걸 반복하는 곳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단편소설 '스노우맨'의 줄거리
이 책에 등장하는 첫 이야기부터 마음이 무겁습니다. 주인공인 직장인 한 남자가 있습니다. 긴 연휴 동안 엄청난 폭설이 내리고, 빌라의 공동 현관문은 온통 눈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출근을 하러 현관문을 나선 남자는 눈으로 막힌 공동현관문이 열리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눈이 녹기를 기다렸지만 다음날도 눈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남자는 집 안에 머무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공동 현관문으로 간 남자는 누군가가 눈길을 파서 나간 흔적을 발견합니다. 애석하게도 그 길은 남자의 출근길과 다른 방향으로 나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새로운 눈길을 파내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끝없는 눈길을 파내다가 지친 남자는 오늘 하루쯤은 더 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마침 그때 회사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회사 사람들이 다들 출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이 쌓인 눈길을 다들 어떻게 헤치고 나간 것일까요? 알고 보니 다른 이들은 쉬는 동안 각자 부지런히 길을 파내었고, 또 비상연락망을 통해서 근처에 살고 있는 동료와 연락하여 같이 눈을 파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남자는 상사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습니다. 남자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눈길을 파내지만 눈은 딱딱하게 얼어붙어서 일은 더디기만 합니다. 출근하지 못한 사람은 남자뿐만이 아닙니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유능한 유대리 또한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그 자세한 이유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책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어려움
돈을 벌고 살아간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이 책은 현실에서 겪을법한 일들을 초자연적인 현상에 녹여내서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는 이 책에 실린 8개 단편소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비현실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을 관통합니다. 직장인으로서 가장 공감 갔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직장인에게서 몸이 흐물흐물해지거나 또는 딱딱하고 건조해지는 병이 나타나게 됩니다. 몸이 딱딱하고 건조해지게 되는 병에 걸리게 된 주인공의 몸은 회사에서 상사에게 깨지면서 더 갈라지게 되고, 견디다 못해 어느새 몸은 부스러기가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상사가 주인공을 나무라는 말도 그 병과 관련이 됩니다. 상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번에 있던 사람은 물러 터져서 사람을 마치게 만들더니. 이번엔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고 뻣뻣한 거야?' 직장과 삶에서 이리저리 차이고 피폐해지는 정신이 부스러지는 육체에 빗대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아무 의미 없이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를 메우며 돈을 받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을 대체 왜 해야 하는 거야?' 싶은 적도 있었는데, 그런 경험들과 맞물리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현실의 지독한 부분들을 때로는 초현실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비트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책 자체는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잘 쓰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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