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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미로, 다시 떠난 모험소설

by 삶공부 2022. 8. 10.

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전은경, 문학동네, 2015

위험한 도입부와 전작의 줄거리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이제는 익숙해진 '미텐메츠'만의 겁주는 도입부가 나옵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책을 읽는 당신은 독살될 거라고 말합니다. 책에 독을 발라놓았고, 이 책장을 넘겼던 독자에게 독이 이미 스며들었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한 바에 의하면, 독자가 다음 문단을 계속하여 읽을 때에만 독에 의해 죽게 될 것이며, 지금 당장이라도 책을 덮는다면 죽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물론 지난 책에서 주인공 미텐메츠와 함께 지하세계의 모험을 겪었던 독자라면 아랑곳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시나 다음 장에서 이 위협은 거짓말로 드러났고, 위험을 감수하고 책장을 넘긴 독자들만이 새로운 모험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리뷰하기에 앞서서, 전작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후속작인 이 책의 전작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주인공 공룡 시인 미텐메츠는 천재적인 원고의 작가를 찾아 부흐하힘으로 향합니다. 고서점이 가득한 부흐하힘에서 스마이크의 계략에 의해 지하묘지로 추방당한 주인공은, 위험에 쫓기다가 부흐링족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평화도 잠시, 또다시 찾아온 위험에 도망치게 된 미텐메츠는 그림자의 성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원고의 작가는 악당 스마이크에 의해 괴물이 되어 있었고, 그림자 제왕으로서 지하세계 안에서만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 제왕의 옆에서 오름을 관통한 책들을 읽으며 글쓰기 수업을 듣던 미텐메츠는 악당에게 복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림자 제왕의 희생과 함께 결국 악당을 물리치게 됩니다. 부흐하힘은 도시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고, 미텐메츠는 그 화재를 피해 부흐하힘을 떠나면서 진정한 '오름'을 경험하고 위대한 작가가 됩니다.

 

기대했던 부흐링족과의 재회는 다음 기회로

속편인 이 책 꿈꾸는 책들의 미로'를 읽으면서 제가 제일 기대했던 것은 미텐메츠와 부흐링족의 재회였습니다. 지하세계의 가죽동굴에 살고 있는 부흐링족은 책을 읽음으로써 배가 부르는 생명체입니다. 부흐링들은 지상세계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평생 동명이인의 작가가 쓴 책들을 달달 외우고 관련 물품을 수집합니다. 그들은 움직이는 도서실을 가지고 있으며 책들을 읽고, 수리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들이 주된 일과입니다. 다정한 부흐링족은 모든 애독가들이 꿈에 그리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습니다. 전작의 마지막 부분에서 악당을 무찌를 때 부흐링이 큰 역할을 했었습니다. 부흐링족은 지상으로 갈수록 숨을 잘 쉬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텐메츠를 위해 지상까지 가서 악당들에게 최면술을 걸었습니다. 호흡곤란이 와서 얼른 다시 지하세계로 가야 하는 와중에도 미텐메츠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꾸물대는 그들 때문에 읽던 제가 다 답답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힐데군스트 폰 미텐미츠'라며 새로운 부흐링을 소개하자 저는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부흐링은 작가의 이름을 가지는데, 당시 미텐메츠는 아직 단 하나의 책도 내지 않은 작가 지망생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최고로 감동적인 장면이었기에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후, 속편인 이 책 앞부분에서 미텐메츠가 받은 의문의 편지 발신인을 보자마자 저는 이 책에 애정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발신인에는 '할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서명마저 똑같고 편지 속 필체마저 같은 그 편지를 누가 보냈을까요? 전작을 본 독자들이라면 바로 그 어린 부흐링이 보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지하묘지로 다시 들어가서 부흐링들을 만나는가를 고대했던 저에게 뒷부분은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재회는 다음 책에서야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매력

미텐메츠라고 하는 공룡이 주인공인 '부흐하힘' 시리즈는 3부작으로 되어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이고, 두 번째는 이 책 '꿈꾸는 책들의 미로'입니다. 아직 세 번째 시리즈는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위험천만한 모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그와는 좀 다릅니다. 작가 특유의 아주 세세한 것까지 묘사하는 습관과 그칠 줄 모르는 수다스러움이 책의 전반부를 장식합니다. 그에 대해 독자가 지쳐갈 때쯤, 인형주의를 공부하러 다니는 미텐미츠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 이야기는 더욱 세세해지고 독자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물건과 세상에 대한 묘사는 더 심해집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이 수많은 글들은 사실 패러디라고 하는데, 인터넷에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정리되어있는 글들이 있으니 찾아보면 읽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책을 다 읽은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인형주의 공부까지 같이 해야 하는 거지?'하고 짜증스러운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지루하기도 했던 이 앞부분은 마지막 단 몇 장의 사건들에 의해 급속도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제가 왜 이 책을 읽었는지, 그 시간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는 듯 미친 듯이 흡입되는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마지막 '옮긴이(실제로는 작가 발터 뫼어스)의 말'을 읽으면서 작가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독자인 저로서는 다음 후속작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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